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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다 보면 최초의 기원을 찾게 되고, 결국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1.
우리 아이 셋 모두는 조산원 출신이다. 태중에는 모두 산부인과에서 가끔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해산 때는 모두 조산원으로 갔다. 둘째, 세째는 차로 대여섯시간 거리를 가서 낳았다. 아내가 고민했는데, 내가 강권한 셈이다. 내가 (아내와) 아기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며....
덕분에 모두 산모와 아기의 때에 맞추어 방안에서 등을 기대고 누운, 산모가 가장 편한 상태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은은한 불빛을 맞으며, 주사나 집게의 위협없이 세상으로 태어나 제 허파로 숨쉬기까지 기다렸다가 탯줄을 잘렸고, 엉덩이를 맞는 대신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물었다. 이런 과정이 바로 조산, 해산을 돕는 과정이다.(사전을 찾아보니 산바라지라는 우리말이 있다.)
세째 해산을 앞두고 찾아가 뵀을 때,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는 물음에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든지 아기를 잘 낳지 않는다며 원장님이 웃으신다. 그리고 말씀이 "요즘 산모들이 몸이 허약해서 출산하는 과정이 힘들어. 그래 시골의 산중에 해산을 앞둔 그리고 출산을 준비하는 부부들을 교육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 하신다.
2.
산부인과병원에서 마지막 건강검진을 떼려니, 의사가 물었다.
"왜요?"
".......... 조산원으로 가려구요."
"그러지 마세요."
그럴 줄 알았다.(그 의사선생님은 차분하고 친절하신 분이다.)
서양의사는 해산을 의사의 관리가 필요한 유사질병으로, 산모도 유사환자로 보는 것 같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점점 더 굳어질 듯 보인다. 해산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있었던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해산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며 경우에 따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 이게 원장님이 교육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하신 까닭일 것이다. 거기서, 이세를 맞이할 사람들이 일하고,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도록 돕고 싶으신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조산원도 세입자 처지가 서러워 주위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새로 둥지를 튼 지라 아직은 마음뿐. 돈이란 사람을 따라 흐르게 마련이라지만, 제발 좀 사람을 따라 흐르길 빈다. 요즘엔 강따라 흐른다는 .....
3.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교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체벌이 금지된 교실에서 금지된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건 간단한 벌과 말 정도인데, 아, 아이들이 그 말을 잘 안 먹어준다. (나도 사탕 많이 먹는 어느 학생을 지도한 간디의 일화를 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정도의 내공이 없는 걸 어떡하랴....) 아이들이 내게 와서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불만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너무 생각이 많고,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 같다. 그래, 니들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다.
아는 형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요?"
"도망가야지."
4.
그 형님 말대로라면 도망가야 하는데 나는 도망을 못 간다. 도망가는 길을 모른다. 그게 일주일마다 한 번씩은 소란과 어지러움을 피하기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야 하고, 하루하루 제발 큰 사고없이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요즘 나의 화두다.도망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본래 도망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