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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와 학생 사이
    학교이야기 2008. 8. 26. 16:06
    교사와 학생 사이(하임 기너트, 양철북)

    1.
     한 이십년 전의 일인데, 요즘같이 예비교사의 수요가 달리는 시대가 아니라 철철 넘쳐나는 시대였기도 했고, 전교조에 대해 강력하게 견제하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러는 2차 전공시험에 아니면 3차 면접에 꼭 튀어나오는 질문이 교사는 노동자인가, 전문직인가, 성직인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질문을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그들이 원하는 답은 전문직이었다. 성직이 왜 끼어들어있나 생각해보니, 아마도 노동자인가 전문가인가 하고 답지를 두개만 두면 상당히 뻘쭘해 질 것 같으니까 그냥 끼워둔 게 아닌가 싶다. (정말 교직을 성직이라고 믿는 사람은 절대 저런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건 이 질문은 마치 성인 남자 아무개에게 당신 사람이요, 남자요 하는 질문과 같다. 논리적으로는 교사는 노동자이며, 전문가입니다가 답이 되는데, 상대가 빤히 노동자 아냐 , 노동자 아냐......하고 주문을 외고 있는데, 면전에서 노동자입죠,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2.
     현장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순간, 무엇보다 나는 내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린이의 심리란 그저 어린 시절의 나 뿐이고, 나처럼 있으나 없으나 별 표를 내지 않고 지내고, 선생님 말씀을 어긴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던 아이는 학교에 거의 없었다. 가끔 아이들로부터 쏟아지는 원망과 무례나 별 의식없이 튀어나오는 욕 같은 건 정말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은 재작년인가, 독서교과모임에서 나눠준 것이다. 그러니까 한 1년 정도 묵은 책이다. (원래 교육심리학이니 교육행정이니 하는 교육 들어간 책을 싫어한다. 별 재미없고 다 읽고 나도 그래서 어쨌단 말이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책이 이런 책이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내내 지난 몇년간을 떠올리게 하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3.
     이 책의 저자 하임 기너트는 1922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그는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교육부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정신요법과 심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과 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쳤다. 이 책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부모와 아이 사이>, <부모와 십대 사이>, <어린이를 위한 집단 심리 치료> 등은 그의 연구와 실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하임 기너트는 교실에서 학생들과 접촉하는 교사들에게 심리적으로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배움은 항상 현재형이며, 그리고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교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교실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교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품행과 인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반응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교사가 인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특별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아이들과의 문제, 학부모와의 문제, 학교와의 문제 등으로 절망하거나 일시적인 기분에 휩싸여 상황의 슬픔에 빠진 교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제공한다.

    4. 다음은 이 책에서 내가 건진 귀한 충고이자 위로이다.

     교사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강해야 한다는 거예요. 강해야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어요. 약하면서 착하면, 학생들에게 가학증만 불러 일으켜 공격을 받게 돼요.(23)

    나도 지나치게 열의가 높고 과도하게 학생들에게 몰두하는 교사들이 실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발전하면 뛸 듯이 좋아해요. 가르치는 일이 그들에게는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에요. 학생들을 활용해서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거예요.(24)

    어린 아이들에겐 튼튼한 영혼을 가진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하거든요.(27)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는 적어도 제트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 만큼이나 많은 기술이 필요해요. 그런데 대학에서는 트랙터 운전을 가르치면서, 그걸 제트 비행기 조정이라고 우겨요. 우리가 이륙하려고 할 때마다 추락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그들은 아이들이 지식에 대해 엄청난 갈증을 품고 학교에 온다고 가르쳤어요. ....아이들은 날 비참하게 하기 위해 학교에 와요.(29)

    이론적으로는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생각도 다 가지고 있다. 불행한 일은 생각만으로는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킨다. 교사가 민주주의와 사랑을 믿고, 존중해 주고, 뜻을 받아주고,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며, 사람은 누구가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니다는 점을 인정하는데도 그렇다. 이런 생각들은 고상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거대하다. 마치 1000달러짜리 수펴난 금화같은 것이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택시를 타고, 전화 한 통화 하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는 동전이 필요하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교사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약간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흥분, 매일 벌어지는 갈등,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위기와 같이 숨돌릴 사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을 효과적이고 인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교사의 반응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교사의 반응에 따라 분위기가 순응이나 반항 쪽으로 갈라지고, 기분이 만족이나 불만 쪽으로 기울며, 마음가짐이 품행 수정이나 복수로 나뉜다. 이렇게 교사의 반응은 아이의 행동과 성격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미친다.(37)

    이 교사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풍자한 그림에 대해서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장난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 만화를 그린 당사자를 찾아내려 하지 않았고, 창피를 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쓸데없이 설교하거나 훈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창의력을 격려해 주었고, 재능을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 주었다.(44)

    이 사건은 교사의 노련함이 상황을 구한 경우이다. 교사는 랠프와 논쟁을 벌이거나 랠프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지 않았으며, 죄책감을 자극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감수성을 발휘했고, 해결지향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교사가 보복을 하려고 했다면, 가시 돋친 말이 오가다 학생에게 벌을 주는 사건으로 변질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45)

    교사는 리어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리어의 무서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냉정한 논리를 구사하지도 않았다. 거짓확신을 주입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교사는 리어의 감정과 소망을 인정하며, 도움을 주는 행동을 취했다..... 아이의 기분을 무시하지 않았고 맞대응하지도 않았다. 훈계를 하거나 벌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50)

    최선을 추구하는 교사들은 상식적인 방법에 의지한다. 그들은 우월감을 과시하는 행동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설교나 훈계를 하지 않는다. 죄책감을 안겨주지 않으며, 약속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꼬치꼬치 그 이유를 파고들지 않으며, 교실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이유를 미주알고주알 캐묻지 않는다.(54)

    백 번을 양보해도,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아 우스갯거리를 만드는 행위는 비교육적이다. 빈정댄다고 해서 반응이 느린 학생을 고칠 수는 없다.(59)

    험담은 교육자에게는 금기 사항이다. 험담을 들은 학생은 험담만 배우게 된다. 험담은 원한을 부른다. 아이들은 교사의 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가 많다.(61)

    비밀을 토로하는 것은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며, 당사자에게는 입을 다물 권리가 있다. "너보다 너를 잘 알아." 라는 말을 아이에게 하는 것은 불법 침입과 비슷한 감정적인 월권 행위이다.(63)

    화가 난다고 해서 아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감정과 의도에 대해서 품위 있게 대응해야 한다.(71)

    무엇보다도 교사로서는 인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난할 때, 교사는 위로해 주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꾸중을 할 때에도, 교사는 도움을 주었어야 한다.(73)

    부모와 교사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아이는 그들이 자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어른들의 의견은 아이의 자존심과 자기 가치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크게 볼 때, 교사와 부모의 언어가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다.(85)

    부모와 교사들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은연중에 되풀이 하는 건전하지 못한 메시지, 다시 말하면 아이의 지각을 밎지 않고 감정을 부인하고, 가치를 의심한다는 메시지를 지워버려야 한다......비난하고 창피를 주는 말, 설교하고 훈계하는 말, 명령하고 지시하는 말, 타이르고 꾸중하는 말, 조롱하고 무시하는 말, 위협하고 매수하는 말, 진단하고 예언하는 말과 같은 식의 대화방법들은 아이들을 야만스럽게 하고, 저속하게 만들고, 비인간화한다.(86)

    나는 500명의 교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사범 대학에 다닐 때, "아이들은 여러분들을 자주 짜증나게 하고, 괴롭히고, 화나게 할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이렇게 하면 됩니다" 하고 가르쳐준 강의를 들어본 기억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 강의를 들어본 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89)

    교단의 현실, 예컨대 과밀학급, 학생들의 끊임없는 요구,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위기를 생각하면, 교사들이 화를 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교사들은 분노의 감정에 대해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 유능한 교사라고 해서 자학을 하거나 순교자가 될 필요는 없다.....유능한 교사는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을 의식하며 존중하단. 항상 인내심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늘 진심어린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는 진지하게 대응한다. 감정에 일치하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귀찮을 때는 귀찮다고 말한다. 인내를 가장하지 않는다. 불쾌할 때 기분 좋은 척하며 위선 떨지 않는다......노련한 교사는 부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데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다시 말하며 모욕을 주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는 비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화를 부추기는 경우에도, 인격을 모독하지 않는다.(90)

    교사의 좌우명은 분노를 표현하되, 모욕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95)

    난 교실에서 아이들과 말씨름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내가 주장을 하면 아이들은 반항을 정당화하고 의무를 뒤로 미루기 위한 반대주장만을 내세워요. 협조를 얻으려면 아이들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기보단 분위기를 바꾸는 편이 더 쉬워요.(102)

    교사가 자기 감정을 배려해 줄 때, 용기를 얻어 현실을 극복하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권고하건대, 학생들을 대할 때 분석과 예단을 피해야 한다. 아이나 그의 가족이 과거에 일으켰던 사건의 역사 속으로 파고들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분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낙인을 찍으면, 아이는 무능해진다. 분석이 병이 될 수 있다.(107)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교사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의견을 말해서는 안된다. 전문적인 교사는 무심코 아이의 자존심을 파괴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교사의 역할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지,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120)

    요즈음에는 아이들을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에 바탕을 두고 키우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젖고 함께 설명을 먹고 자란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분석에 노출된다. 어른들은 아이의 인격을 침해하고 동기를 의심하며 행동을 설명한다.......아이들의 경우는 감성적인 동기가 없으면 학습은 불가능하다. 교사가 감성을 무시하고 지루한 논리적 설명에 의존할 때마다 학습은 절름거리며 중단된다.(128)

    판결을 내리는 칭찬은 파괴적이고, 인정하는 칭찬은 건설적이다......판결을 내리는 칭찬은 아이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남에게 의지하게 만들며,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자신감, 자립심, 자제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와 같은 자질들은 외부의 판단에서 자유로울 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동기와 판단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137)

    칭찬을 들으면 마약을 맞은 것처럼 아이의 기분은 좋아질 지는 모른다. 잠시 동안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타심을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인정하는 주인이 된다. 아이는 그들에게 의지하여 욕구를 해소하고 자기 가치를 확립한다. 그들의 입을 통해 날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138)

    칭찬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그 소리를 듣고 아이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이다.(138)

    칭찬할 때는 특정한 행동을 인정해야 한다. 인격을 평가해서는 안된다.(142)

    판결을 내리는 칭찬은 위협으로 들릴 때가 자주 있다. 기쁨이 아니라 불편함을, 즐거움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판결을 내리는 칭찬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몸을 사리고 뒷걸음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은 그런 칭찬으로 자기들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의도에 대해 분노하고 변화를 유도하려는 시도에 대해 저항한다.(146)

    인격에 대해서 판결하지 않을 때나 성격을 평가하지 않는 칭찬을 할 때에만, 아이는 안심하고 두려움 없이 실수도 저지를 수 있고, 불안감 없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148)

    훈육의 본질은 처벌을 대신할  효과적인 대안을 찾는 데 있다. 처벌을 하게 되면, 아이의 분노를 자극하여, 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 벌을 받은 아이는 적대감의 인질, 앙심의 포로가 되고, 복수심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분노에 함몰되고 원한에 빨려들어가 공부할 시간이지만 정신이 없다. 처벌할 때는 미움을 낳는 방법을 반드시 피하고 자존심을 키워주는 방법을 장려해야 한다.(162)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뒷받침해 줄 반응을 자극하려고 종종 일부러 못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기 의견에 대한 증거를 얻기 위해서 교사의 화를 돋우며, 벌받기를 자청한다.(164)

    교사의 공식적인 힘은 제한되어 있으며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교사의 권위는 개인적인 감화력과 설득력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데서 비롯된다.(165)

    책임감, 존중하는 마음, 충성심, 정직, 자비심, 연민과 같은 윤리적인 관념들은 직접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167)

    이 뒤부분은 부모와 교사간의 관계, 교사와 학교관리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생략함.

    5.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사의 인정, 칭찬, 지적, 훈계 등과 같은 교육적 행위가 어째서 양날의 칼과 같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는 것은 평가에 대한 부분이다.  평가는 그것이 설령 긍정적인 칭찬이라 하더라도 인격과 관련된 판단을 담고 있는 것은 아이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 말이다.

     성적을 매긴다는 것이 사실은 판단을 내리는 일이라, 학교에서는 이것이 학생들의 인격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교사도 학교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평가와 관련된 논의가 공개여부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학력신장이라는 벽에 다시 한번 가둬지고, 최종적으로는 일류대 진학이라는 목표에 의해 묻혀 버린다.
      그러니까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성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가, 그래서 일류대 진학에 그것이 보탬이 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다 하는 것이 현재 한국교육의 지적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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