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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 거짓말이었다면 나를 구속하라
    이야기 2008. 4. 23. 11:14
    “거짓말이었다면 나를 구속하라”
    김용철 변호사 회견
    한겨레 김남일 기자 신소영 기자
    » 김용철 변호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나를 구속하라.”

    말로는 누구나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단죄할 수 있다. 조준웅(67) 삼성 특별검사도 지금으로부터 121일 전 특검에 임명되자 “검찰 등 수사기관이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수사하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특검팀이 내놓은 150여쪽에 이르는 수사결과 발표자료는 “차명주식은 이건희 회장 개인 것이 분명하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같은 발표자료에 등장하는 김용철(50) 변호사는 “신빙성이 의심되고, 모순에 차고, 수시로 변하는” 남자였다. 김 변호사가 ‘나를 처벌하라’고 나선 이유다.

    “20번 출석했지만 앞뒤 안맞는다는 추궁 없어”

    18일 아침 김 변호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새벽 3시까지 변호인들과 반박자료를 준비했다고 한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그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참고인 진술을 저렇게 조목조목 물어뜯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비자금과 로비 의혹을 대충 덮을 것은 예상했지만 나를 물어뜯을지는 정말 몰랐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결과 발표문의 상당 부분을 ‘김 변호사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이 없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심지어 삼성 본관에서 돈을 주고받는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 김 변호사가 특검팀에 그려준 사무실 약도조차 ‘로비는 없었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그는 “사람 말을 비틀어서 저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특검팀의 로비 의혹 수사 태도에 넌더리를 쳤다. “압권은 특검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명단’입니다. 제가 삼성 법무팀장으로 있을 당시의 검찰 주요 보직자 명단을 내밀며 ‘확인’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들이 나중에 검찰총장이나 장관이 될 때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 ‘특검 수사에서 해명됐다’며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환장하겠더군요.” 그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대신 마무리 조사를 받으며 “‘면죄부 조사면 더이상 진술 안 하겠다’는 내 말을 반드시 조서에 남겨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특검팀에 출석해 20여 차례 조사받았다. “내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추궁당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왜 수사 끝나고 나를 씹는지 모르겠네요.” 정작 수사 시작부터 종료까지 수시로 말을 바꾼 것은 삼성 쪽이었다. “<행복한 눈물>을 보세요. 애초 삼성 쪽은 홍라희씨가 샀다고 했다가 곧바로 아랫사람 착각이었다고 말을 바꿔요. 그런데 특검팀은 그걸 인정해주거든요.”

    “수사 끝난 뒤 왜 나를 깎아내리는지 모르겠어”

    » 김용철 변호사가 18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듯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는 특검팀이 “(김용철과 삼성 가운데) 누가 수사 대상인지 전혀 모르는 거 같다”고 했다. 수시로 바뀌는 삼성 쪽 해명은 별다른 확인도 없이 그때마다 인정했던 특검팀을 삼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특검팀을 얼마나 비웃을까요. 아마 고마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을 텐데’ 하면서.”

    김 변호사는 이번 수사를 수술에 빗댔다. “의사가 수술 끝나고 뱃속에 가위 넣고 꿰매도 환자들은 몰라요. 우리도 특검팀이 뭘 수사했는지 모르잖아요?” 덜 도려낸 암세포는 나중에 온몸으로 퍼진다. “국가기관·언론·지식인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삼성의 위력이 드러난 결과죠. 이 위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악성종양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성과는 역설적이게도 삼성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한 데 있다고 김 변호사는 여기고 있다. “그 힘의 실체를 저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수사 결과가 저를 공격하지 않습니까?”

    그는 특검팀 안에서 ‘빅딜’도 아닌 ‘그레이트 딜’이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고 했다. “특검팀이 수사를 풀어갈 복안이 있다고 하길래 뭔가 했습니다. 이제 보니 불구속 기소를 하는 대신 돈의 원천을 덮어주고 수사를 검찰에 넘기지 않기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비 당사자들에게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김 변호사는 자신에게도 ‘거래’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특검팀에서 ‘로비 의혹이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고소당한 게 문제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검찰에서 원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특검, 삼성인지 김용철인지 수사대상 헷갈려”

    그는 “삼성이 수십년 동안 감춰 놓은 돈을 국가예산으로 찾아서 합법적으로 세탁까지 해준” 특검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수사 결과를 보고 믿을 국민이 있을까요?” 하지만 걱정도 많다. “한달 뒤에 누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사건을 구속 수사할 수 있겠습니까? 제헌절쯤 되면 벌써 집행유예 판결이 나지 않았을까요?”

    그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을 세속의 법정이 아닌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다. 불씨가 남으면 더 큰 불로 번지기 마련이다. “인생을 걸 만한 일을 진짜로 찾은 겁니다. 저나 사제단,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동참할 것입니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 밤 사제단 신부들은 김 변호사에게 “명예를 함께 지키자”고 했다고 한다. “사제단과 제가 제기한 의혹들이 거짓이라면, 세상을 이렇게 시끄럽게 한 죄는 엄청납니다. 거짓말이라면 허위사실로 세상을 흔든 죄를 물어 저를 구속시켜야 합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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