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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철 선생님의 글입니다.이야기 2007. 9. 28. 14:43정희철 선생님이 여름지기 까페에 2001년이나 2년에 올린 글로 기억됩니다. 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어 선생님의 허락없이 글을 올립니다. 카피 레프트 (^ --- ^).
창수면 수리에 오래된 집이 하나 있지요. 덕후루라고 원래는 절집이었다는데 뒤로는 널찍한 밭이 있어서 시원하고 들머리 쪽으로는 비오리가 헤엄치는 저수지도 있어서 풍광이 수려합니다. 거기 가는 길섶에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누리장 나무는 꽃도 이쁘지만 잎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나고요, 열매가 익어갈 때 오묘하게 변해가는 빛깔이 참 매혹적입니다. 개머루의 보라색 영롱한 열매도 참 환상적이고요, 어두운 숲 그늘 아래, 아기 얼굴로 반짝이는 물매화는 다른 어떤 꽃보다도 찬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동구에 있는 아름드리 당산 나무에게서 신령스러움을 느낀 반면, 눈에 안 띄게 작은 물매화 꽃에게선 존재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라고 다 아름답다고 강변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는 말이지요. 요즘처럼 크고, 힘세고, 빠른 것만 행세하는 세상에서 작고 여리고, 느린 것들은 언제나 소외되고 배제당하다가 결국에는 도태되고 마는 잘못된 현실을 개탄하며 작은 것도 아름답다고,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고 싶은 겁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원래 슈마허라는 영국 경제학자가 30년 전에 쓴 책의 이름입니다. 인도에서 오래 동안 자립적인 공동체 경제를 연구한 결과 인간적인 기술과 작은 규모의 경제 체제를 거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간디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지요. 거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시켜가는 악의 축입니다. 통합과 합병, 매수, 결탁...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독점하는 것은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일으키는 길입니다. 세상의 가진 자들은 승자의 논리만을 내세워 경쟁을 통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편으로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자고 합니다. 자유 시장 경제의 기업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만 인간다운 삶의 영역에서는 잘 맞지 않습니다.
온전히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외치고 싶은 말은 " 그냥 우리끼리 오손도손 살게 내버려 둬라" 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 큰 병원과 큰 학교를 짓지 않아도 우리 전통과 관습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가 우리 의지대로 질병과 무지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큰 병원과 큰 학교를 짓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기에 우리는 작은 학교와 작은 병원을 원합니다. 작은 학교와 작은 병원이 유지 존속하기 위해서는 작은 공동체의 보존이 꼭 필요한 것이므로 우리는 작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반세계화 운동이지만 소박하게 얘기하면 농어촌 살리기 운동입니다. 그러나 사실 소박한 담론은 아닙니다. 느슨한 싸움도 아니고요. 작은 공동체를 되살리는 운동, 그리하여 우리끼리 오손 도손 살아가자는 것은 세상을 바꾸자는 운동입니다.
영덕 동지들!
지역의 농민 어민 영세상인 형제들과 삶을 같이 하는 싸움판을 짜보십시오 어제 저녁 간디 자서전을 읽으며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미천한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가장 고귀한 영혼을 지킬 수 있다고... 지역 주민들이 자기다운 삶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십시오
막걸리 나눠 마시며 넘어진 벼 같이 일으켜 세우고 누추한 집에 같이 살아도 보고 시골 버스에 할아버지 할머니들 짐 들어 주며 영혼으로 함께 하십시오. 그런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지금 당장 학교를 살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파괴적인 삶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자기다운 삶을 의식화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간디 같은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해월 같은 분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 한 사람은 천명, 만 명으로 몸을 나툴 것이므로 우리끼리 오손도손 살아갈 세상에 만 가지 꽃과 나무가 될 씨앗을 뿌리는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다 간디가 되고 해월이 되겠다고 결심합시다
동지들, 우리는 오손 도손 살아야합니다. 우리다운 삶을 해치는 그 어떤 체제나 습관이나 가치관을 부정하고 우리다운 삶 - 누추하고 가난하고 느리며 약하지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더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합시다
-양동 초막에서 정희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