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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생각/책읽기 2010. 4. 6. 00:29

    녹색평론 이번달 호에 실린 이반 일리치 관련 글에 보면, 의료가 병을 만든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같은 이름을 가진 일리치의 책도 있다 한다. 글을 쓴 김종철씨는 침, 뜸과 같은 민간치료요법으로 낫지 않는 병이라면 그냥 죽는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몸이 좀 피곤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거나 하면 뜸을 뜬다. 뜸을 뜨고 나면 몸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사실이다. 만약 뜸을 뜨고 나서 몸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뜸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서 별 효과가 없는대도 수고로이 해야 하는 일에는 강한 외적 보상이나 강제가 뒤따라야만 하는데 침뜸 놓는데 뭐 별 대단한 게 뛰따를 일이 없다. 그저 효과가 있으니 사람들이 뜸을 뜨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법으로는 사람의 몸에 뜸을 떠주면 안 되는 모양이다. 어째 법이란 게 이런가. 뜸을 떠서 부작용이 심각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모르겠는데, 그럴 일 전혀 없다. 몸에 조그만 화상자국이 남기는 하지만, 뜸을 뜨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건 다 알고하는 일이고......

    그걸 누가 법으로 막을까. 국회의원들과 한의사협회가 그 주동이란다.
    그걸 왜 법으로 막을까. 뜸치료는 의료행위라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해야 한단다. 
    그걸 법으로 막아도 되는 권리를 누가 그들에게 주었나. 분명한 건 백성들이 그런 권리를 그들에게 주거나 주는 데 동의한 일은 없다는 점이다.

    홍세화씨가 어디선가 그런 말을 했지요. 우리나라는 지가 고생해서 공부하고 지가 학비내서 대학 다니고 자격증 따는 세상이라서 나중에 자격을 얻고 나면 본전 생각이 나서 돈 버는 데 전혀 부끄럼이 없다고.... 내가 의사될라고 쌔빠지고 공부하고 등록금 내 돈으로 내서 다니고 해서 의사되고 변호사되고 회계사 됐는데, 본전 못 찾으면 억울하잖나... 물어보고 싶다. 본전만 찾으면 더는 돈 욕심부리지 않는 건지....

    다음은 구당의 소리이다.

     침뜸 치료를 받고 싶다는 환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나 구당은 세상을 향해 입을 열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나 구당의 가슴은 지금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지나 9월 18일 서울시가 나에게 한 장의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침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 내가 뜸 치료를 한 것이 의료법 제27조 위반에 해당하므로 45일 동안 침사 자격까지 정지한다는 행정처분통지서였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침뜸 시술과 봉사활동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청량리에 있는 침술원과 전국 30여 곳에 잇는 봉사실에서 나 구당과 4,000여 명의 제자들에게 꾸주히 침뜸 치료를 받으며 차도를 보이던 고질병 환자와 연세 많은 노인분들이 갑작스런 치료 중단 소식을 전해 듣고 야단이 난 거입니다. 자격정지 첫날 새벽부터 찾아와 애처럽게 매달리는 수백 명의 환자들을 지켜 보고 있으려니 나의 가슴은 미어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우리는 침뜸 치료를 받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절규했습니다.

     의료법상 내가 침사면허만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침사 자격으로 침과 뜸 치료를 하는 것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관습입니다. 내가 끔을 뜨기 시작한  것은 열한 살 때부터였습니다. 의원이던 선친께서 뜸뜨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자랐고, 1943년에 침구원을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뜸을 떠 왔습니다. 80년이 넘는 세월을 뜸을 떠서 환자를 치료해왔습니다.

     지금이야 경제적 환경이 좋아졌지만 예전만 해도 우리 집에 찾아오는 환자들 중 돈이 없어 별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뜸자리를 잡아주고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 뜨라고 했는데, 그분들 병이 모두 나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우리 집을 '뜸집'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이것이 나의 호가 '구당'이 된 사연입니다. 오죽하면 일구, 이침, 삼약이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나의 제자들이 한의사나 의사들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대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슬로건을 걸고 노인들에게 무료봉사를 하던 제자들이 한의사 단체의 고발을 받아 '무면혀 시술' 혐의로 기소유예를 당하고 벌금형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말도 안 되는 법률상 문구의 허점을 악용해 고발해온 것은 처음입니다.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호가 '뜸집'이고 뜸을 뜨면 환자를 고칠 수 있는데, 술자인 제가 어떻게 뜸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 의학이 포기한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낸 뜸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 의학이 포기한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낸 우리의 보배인 뜸을 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없습니다. 침사와 구사은 일제 강점기에 편의상 나눈 것일 뿐 현실적으로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허임도 침구경험방이라는 명저를 통해 침과 뜸 처방을 나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뜸이 없는 침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침사와 구사를 법률상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만 침과 뜸을 함께 시술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의사와 의사 여러분.
     의자의 존재 이유는 환자의 병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의료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질병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300여 명의 의사들을 포함한 제도권 의료인들이 내 침뜸의학 강의를 듣고 제자가 된 것도 오로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마음에서였을 겁니다. 

     한의사들은 한의대 시절에 침과 뜸을 충분히 배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침, 뜸, 부항은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의료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한의사들이 이러한 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200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 자료에서 뜸 시술 건수와 급여비 규모를 살펴보니, 한방치료 급여비 대비 2.8%에 불과하더군요. 한의사들이 왜 비싼 보약 장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지, 한의원이 왜 갈수록 환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정치인 여러분.
     나는 그동안 여러 대통령들을 비롯해 많은 유명 인사들을 침과 뜸으로 치료해왔습니다. 그밖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침뜸 치료를 받은 국회의원만 해도 1,000명에 달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비록 내가 알리기는 했지만, 화상침이나 무극보양뜸은 위대한 우리의 문화적 자산입니다. KBS에서 추석 특집으로 행한 '침뜸 이야기'에서 화상침이 소개되자, 많은 시청자들이 '의학적으로 입증만 된다면 노벨상감읻'고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환자들이 절박하게 찾아와서 치료해달라고 매달려도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저로서는 차마 환자들을 쳐다볼 수조차 없습니다. 불합리한 의료법 규제 때문에 환자를 위한 의학을 사장시켜야 합니까.
     많은 정치인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나에게 침뜸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불합리한 의료법 개정이나 침구사 합법화를 위한 입법 활동에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감히 쓴소리를 하겠습니다. '빽'없고 힘없는 국민들은 앓다가 그냥 죽어도 된단 말입니까?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단 하루라도 청량리에 있는 나의 침술원에 나와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새벽부터 찾아와서 침뜸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환자들의 처절한 절규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나 구당은 세상을 향해 선언합니다.

     첫째, '우리는 침뜸 치료를 받고 싶다'는 환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나는 감히 침과 뜸으로 환자들을 치료할 것입니다. 고발할 테면 하십시오. 체포할 테면 체포하십시오. 옥에 가두려면 그렇게 하십시오. 나는 오늘 침과 뜸으로 치료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치료할 것입니다.

     둘째, 한의사와 의사 여러분들에게 끝장토론을 제안합니다. 100분토론도 좋고 심야토론도 좋습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여러부도 적극적으로 토론에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회 지도층 인사와 지식인 여러분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침구사 부활은 국민 건강을 위해 정말 시급한 조치입니다. 일본, 중국, 북한 등 동양 3국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구에서까지 모두 침구사를 합법화하고 있슴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 정통의학은 씨가 마르고 모든 걸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이 올지 모릅니다. 사실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한의사와 의사 등 의료인 여러분.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 여러분,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 여러분. 이 94세의 의료인이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침구사 합법화와 사회적 공론화에 진지한 자세로 나서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8년 10월 17일 구당 김남수 배상

    "가을이 다 지나도록 정부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한의사협회는 언론이 제공하는 토론의 장에 참석하지 않고 내빼기 일쑤였다. .."(282쪽)

     생각할수록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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