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시사IN 신호철 헬싱키 비주얼 아트 고등학교 학생들이 사진 감상 수업을 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대학 입학 경쟁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 | “물론 나는 핀란드 교육이 성공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라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제도가 한국 실정에 맞는지 알 수 없다. 남의 나라 제도를 모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핀란드 교육위원회(FNBE) 참사관 레오 파킨 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핀란드 교육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 핀란드 교육 현장이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핀란드가 마냥 천국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겪는 똑같은 문제가 핀란드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핀란드의 교육제도를 고스란히 한국에 가져와서 내일 당장 실행한다 해도 한국의 고질적인 입시 경쟁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학생이 고등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서울의 강북 지역 중학생이 강남 지역 고등학교에 지원하는 일이 가능하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제도가 시행되면 강남의 특정 학교에 지원자가 몰리고 결국 고등학교가 서열화될 것이다. 경쟁을 이기는 방법은 중학교 평점을 높이는 것이므로 ‘평점 10점 만점 책임 보장 학원’이 생길지도 모른다.
핀란드가 아무리 평준화 교육을 지향한다지만 고등학교 간에 명성의 차이가 있는 것은 현실이다. 한국처럼 일제고사가 없어 학교 간 격차를 비교할 자료는 없지만, 발품을 열심히 파는 학부모라면 어느 학교가 수준이 높고, 어느 학교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시·부촌 지역 고등학교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100년 명문고’가 탄생하지 않는 까닭
하지만 웬일인지 핀란드에서는 특정 고등학교에 원서가 쇄도하고 ‘100년 명문고’가 탄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경쟁률이 높다는 게 기껏해야 3대1 정도이고, 한 해 A학교가 경쟁률이 높았다면 도리어 다음 해에는 B학교가 경쟁률이 높아지는 식으로 변한다.
이에 대해 레오 파킨 씨가 힌트를 줬다. “만약 특정 학교가 학부모로부터 외면받는 징후가 보이면 교육위원회는 그 학교를 제 궤도에 올리기 위해 집중 육성한다. 그러면 다시 똑같아진다.” 한국에서 ‘평준
|
 |
|
ⓒ시사IN 신호철 핀란드 교육위원회 참사관 레오 파킨 씨(위)는 “남의 나라 제도를 모방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 화 폐지’의 근거가 되는 학교 간 학력 격차가 핀란드에서 ‘평준화 강화’의 대상이 된다. 똑같은 결과를 놓고 해석이 다르다.
여기에는 물론 핀란드 학부모의 여유도 한 몫한다. 핀란드 기술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안티 무스트란타 씨는 “딸을 집 가까운 고등학교에 보냈다. 학교 간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굳이 학교 간에 미세한 차이를 따져가며 머리 쓰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 알다시피 핀란드 대학은 모두 평준화되어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핀란드는 대학 교육 경쟁력과 교육제도 경쟁력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전국에 대학이 20개밖에 없어 대학을 못 가는 사람은 폴리테크닉(기술 전문학교)이나 직업 현장에 가야 한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다지만 여전히 명문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를 하는 학생이 핀란드에도 있다(한국처럼 1년 내내 별을 보는 재수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해외여행 같은 걸 하다가 시험을 앞두고 귀국해 공부한다).
어쨌든 핀란드에서는 대학 입학 경쟁이나 대학 간 격차가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핀란드 교육이 평등하게 유지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핀란드 사회 자체가 경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균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새로운 실험 하나가 시작되었다. 핀란드 최초의 사립대학 건설 프로젝트. 일명 ‘알토 프로젝트’다.
2010년 1월 개교를 목표로 삼는 알토 대학교는 핀란드 국립대 20개 중 3개를 통합해 하나의 사립대로 만드는 계획이다. 통합 대상에 오른 대학은 헬싱키 경제대학(HSE), 헬싱키 기술대학, 헬싱키 예술디자인대학이다. 알토라는 이름은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 알바르 알토에서 따왔다.
알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헬싱키 경제대학 하누 세리스토 교수는 “기술과 디자인과 경영의 결합은 이상적인 미래 대학 모델이다. 올해 5월 국회에서 사립대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핀란드에서도 ‘대학 서열화’ 징후?
왜 사립대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국립대 구조 속에서는 글로벌 대학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특급 교수진을 초빙하는 문제라든지 유연하게 조직을 움직이려고 할 때 국립대 틀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우리 대학은 2020년까지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이 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경쟁 상대로 염두에 둔 듯했다.
알토 대학 재단 출범을 위해 7억 유로(약 1조2000억원)을 모으고 있다. 이 중 3분의 2는 국가가 대고 3분의 1은 재계에서 충당할 예정이다. 재단 자본금을 재계에서 댄다는 소식에 해당 대학 학생들은 긴장한다. 기업의 입맛에 맛게 대학 교육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하누 세리스토 교수는 “이사회에서 선임되는 총장은 정부나 재계로부터 중립을 유지할 것이다. 물론 사립대가 되더라도 등록금은 무료다”라고 말했다.
일부 교육 관계자는 알토 대학이 출범하면 나머지 17대 국립대와 알토 대학 사이에 격차가 생겨서 대학 평준화의 정신이 무력해진다고 비판한다(이것이 법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이유다). 어쩌면 핀란드에도 대학 서열화가 시작되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알토 재단 설립 법안은 올해 통과가 거의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