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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는다는 것.학교이야기 2014. 5. 19. 11:41
작년에 교육부 연구대회에서 받은 상이다. 물론 자랑하기 위해 올린 건 아니다.
예전에 교육청 장학사가 자체연수를 하는데 이런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교사들이 연구대회나 경진대회 이런 대회에 많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자기발전이 있다.(고만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발언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한 무시와 폄하의 뜻을 담고 있었다.) "
몇 년이 지나 연구대회에 참가해서 이렇게 상을 받았다.(안 했으면 싶었지만 학교전체가 하면 가산점이 있다던가 해서 했다. 그렇다고 이름만 올린 건 아니고 할 건 했다.) 상을 받은 입장에서 그 때 장학사가 했던 발언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얻은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크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우선, 얻은 것으로는 입상점수가 있겠고, 해당 연구분야에 대해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된다는 점,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 요령, 편집능력 등이 뒤따른다.(나는 최종적인 보고서 작성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잃은 것은, 먼저 교육과정 운영의 시간적 여유다. 실제적인 활동과 그 결과물(여러 보고서, 그림, 사진 등의 활동실적물)등을 보고서에 담으려면 주당 1~2시간의 할애가 필수적이다. 학교에서는 대체로 창체시간을 이용하는데 문제는 창제시간도 교육부에서 안전교육 몇시간, 성교육 몇시간, 독도교육 몇시간 하는 식으로 지침을 내리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교과운영에도 대회준비나 학교행사 등으로 인해 시간이 빠듯한데, 교과운영에서 체험중심운영이나 프로젝트중심활동수업등의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한다면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두번째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연구대회 주제는 출품하는 교사들이 해당분야에 속하는 소주제로 정하는데, 여기에도 유행이 있단다. 보고서가 실제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결론이 "긍정적임"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해진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교육활동이 학생들의 흥미와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기 힘들다. 교육활동이 언제나 학생의 흥미와 요구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나 학생들이 지겨워하고 싫어하는 데도 억지로 끌고 가야만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된다.당연히 교사의 강압과 회유가 설령 억지로 끌고갔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주제를 정할 때 학생의 의사를 중심에 두고 결정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로대회든 뭐든 연구대회의 목적은 그것이 학생들의 교육적 지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연구대회에 같이 참가하면서 이런 거 왜 하는지 동료교사로부터 솔직한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뭘까? 그렇다, 점수! 그리고 점수는 왜 필요할까? 그렇다. 승진때문에... 이것이 세번째 잃는 것이다. 학교조직의 기품.
여기 승진과 상관없는, 아니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승진하려면 거의 할 수없는 일이 있다.
교육과정이 전제로 하는 학생은 평균적인 학생이다. 그러나 실제로 반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보충지도가 필요한 경우가 적어도 2~30%는 된다. 적어도 말이다. 보충지도를 하려면 진단평가를 하거나 교과서의 형성평가를 확인하여 부족한 부분을 알아내야 한다. 한 반 학생이 25명 정도라 치고 1인당 수학, 수학익힘 책 확인하는데 5분이라 치자. 수학과목만 검사하는 데만 125분, 하루 두 시간이 걸린다. 검사한 후에는 틀린 부분을 재지도하고 필요한 경우 보충지도를 한다면 별도의 시간이 또 필요하다. 생활지도는 또 어떤가.
교육부에서는 학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인 바 있으나 획기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시험을 많이 치면 되지 않겠냐며 전국일제고사를 몇 년간 치게 하기도 했으나 별무소득. 학생과 학교만 엄청 괴롭혔다. 학력을 올리는 방법은 교사들이 학생들과 지내는 시간을 늘려주면 된다. 늘려주면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서로 알아가게 되고, 서로 친해지면 그 때부터 교육이 시작된다. 그러면 학력, 올라갈 것이다. (학력만 올라가겠는가.) 쉬워보이는가?
절대 쉽지 않다. 교사에게 시간을 주려면 지금 교사가 하고 있는 교육행정업무를 전담해 줄 인력이 필요하다. 학급당 학생수도 줄이고, 교사를 더 뽑아야 한다. 일제고사 치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 것이다. 돈은 더 많이 들이면서 교사들을 내버려두는 일,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