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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소 본받지 말고 정약용 본받아라”[시사인 111호에서 길음]
    이야기 2009. 11. 3. 05:44

     

    1982년 대학(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법을 공부하고 있고 세부 전공은 형법이다. 요즘 내 전공과 관련해 온갖 일이 벌어진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웃음).

    형법 정책과 관련해 과잉범죄화와 표현의 자유 위축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과잉범죄화라는 어려운 단어를 썼는데, 예를 들면 살인·강간 범죄가 일어나면 경찰과 검찰권이 개입한다. 이런 걸 국가형벌권이라고 하는데 국가형벌권이 개입하면 시민의 생명·재산·자유를 제약하거나 박탈한다. 그래서 범죄를 규정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범죄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게 보인다. 예를 들면 구속 수사를 받은 미네르바(박대성)를 보자.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1심 판사가 ‘좌빨’이어서 무죄를 내렸겠는가? 전혀 아니다. 보수적인 판사의 눈에도 미네르바는 무죄로 보이는 것이다. 실제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민주주의 핵심 원리이다. 정부의 구속 수사 방식은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민주주의 핵심 원리를 스스로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도 구속 수사한 이유는? 미네르바가 구속되는 것을 본 다른 누리꾼들이 자신이 올린 글을 삭제하거나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이를 법률 기본권에 대한 냉각 효과라고 한다. 기소를 하는 순간 시민은 얼어붙게 된다.


    정연주 전 사장이 배임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결국 무죄판결이 났다. 나는 학생들에게 정 전 사장이 무죄를 받는다고 공언했다. 배임은 형법상 중요한 재산 범죄이다. 정 전 사장의 배임혐의 내용은 국세청과 한국방송이 세금 문제를 두고 소송을 하다 법원의 조정 권고에 응했다는 것뿐이다. 이사회와 경영자문위원회를 거쳐 조정에 응했는데 이걸 배임으로 처벌하면 법원은 배임 교사범이 되고 만다. 이렇게 정 전 사장 사건은 무죄가 났는데 사건을 지휘한 차장검사는 지난 인사에서 승진했다. 결국 유죄면 좋지만 무죄가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문화방송 <PD수첩> 사건도 임수빈 형사 2부장이 수사를 맡았다가 사직했다. 임 부장은 ‘좌빨’ 검사이거나 진보 검사가 아니다. 공안검사이다. ‘공안통’ 검사가 보기에도 수사할 수 없고 기소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낸 것이다.


    촛불이 꺼지고 나니까 촛불시위 참가자를 처벌하고 있다. 이른바 광장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 장치이다. 폭력이나 방화는 통제되어야 하나, 통상의 광장에서 발생하는 경미한 불법은 표현의 자유 안에서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요한 법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과정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일탈을 강경 진압하는 게 법치라고 믿는다.


    조·중·동을 상대로 한 소비자 불매운동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강요죄나 공갈죄로 수사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처벌한 예가 없고, 불매운동을 소비자 운동으로 보장하고 있다. 신지호 의원 등이 제출한 이른바 ‘마스크 금지법’도 논란이다. 형사법학회에서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보통 성매매 여성이 시위를 할 때 마스크를 쓴다. 이런 경우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해야 하나? 법안을 보면 마스크 착용뿐 아니라 마스크를 소지한 경우도 처벌된다.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고 가도 처벌된다는 의미이다. 황당하다. 보수적인 형법학자도 반대의견을 낼 수밖에 없다.


    형법상 모욕죄가 있는데도 따로 사이버모욕죄를 만들려고 한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사이버모욕죄가 없어서 최진실이 죽었다고 주장한다.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이런 주장을 한다. 사이버모욕죄를 만들려고 하는가? 비법률가들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현재 모욕죄는 모욕당한 사람이 처벌해달라는 의사 표시를 할 때 수사가 시작된다. 모욕을 당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사이버모욕죄의 핵심은 당사자가 처벌 의사를 표현하지 않더라도 바로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사이버모욕죄가 만들어지면 지금 인터넷상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을 폄훼한 수십만 누리꾼이 수사 대상이 된다. 1975년에 있었던 국가모욕죄, 국가기관모욕죄를 부활시키는 셈이다.


    법 집행과정에서 편향성도 문제이다. 법 앞에 평등이 이뤄지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탈옥수 지강헌이 자살하기 전에 한 말이다. 2005년 7000원을 훔쳤는데 법원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비디오방 종업원이 60만원 어치를 빼돌렸다고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900억원을 횡령했지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이 선고됐다. 이를 두고 노회찬 전 의원은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명’만 평등하다”고 말했다.


    법치란 뭐냐? 법치는 공안 통치인가? 입을 닫게 하고 법을 지키는 게 법치인가? 전혀 아니다. 법치가 무엇이고 법률가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이계심·정약용·김이소’ 일화에서 되짚어보자. 18세기 조선 정조 시절 황해도 곡산에서 농민 폭동이 일어났다. 관에서 군포 대금을 200냥에서 900냥으로 대폭 올려 징수하자 이계심이 백성 1000여 명을 이끌고 곡산 관아로 달려가 지금으로 치면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당시 사또가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계심은 산으로 도망갔고 수배령이 내려졌다. 중앙 정계에 있던 정약용이 정치적 격변 때문에 곡산 부사로 부임한다. 그때 좌의정이 김이소였는데, 부임하는 정약용을 불러서 이계심을 붙잡아서 공개 처형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런데 이계심은 정약용이 부임하는 길목에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시위를 벌인 10여 가지 이유를 적은 문서를 전달했다. 정약용이 이를 보고 무죄판결한 뒤 석방했다. 정약용은 “관이 현명해지지 못하게 되는 까닭은 민이 제 몸을 꾀하는 재간을 부리고 관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이계심) 같은 사람은 관이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다”라고 판결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김이소가 아니라 정약용이다. 어느 사회나 김이소 같은 사람도 있고 정약용 같은 사람도 있다. 두 쪽의 대립은 항상 존재한다. 이계심·정약용 그리고 김이소가 얽힌 일화는 과거가 아닌 현재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정리·고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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