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책읽기

뜻으로 본 한국 역사

비숲 2007. 9. 28. 14:49
우왕 6년 9월 이성계가 운봉에서 그때 삼남 일대를 노략질하던 왜구를 무찌르고 이기고 돌아올 때에 최영은 들 밖까지 나와 맞으며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뿌리고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공이여, 공이여, 삼한을 한번 고쳐 만듦이 이 한번에 있소. 공이 아니면 이 나라가 누구를 믿겠고." 하였다. 이때 왜구의 장난은 매우 심하여 평안히 있을 날이 없었고, 더구나 이 운봉의 도둑은 더욱 사나웠으므로 부하가 모두 겁을 내어 나가지 않으려는 것을 이성계가 자기가 앞장서서 나가 싸우며 탄 말이 죽기를 두 번이나 하고, 화살이 그 다리에 박혀도 기운을 더욱 돋우어 나가, 대적의 날랜 장수 아지발도를 죽이고 이겨 얻은 싸움이었다.
 운봉이라면 지리산 기슭이니, 한 나라 정규군도 아닌 민간 도둑 무리가 바닷가도 아니요, 그 깊은 안에까지 와서 둥지를 틀고 있어도 그것을 쫓아내지 못한 것을 보면 그때 나라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군비나 장수 문제가 아니다. 국민정신 문제다. 그런 도둑이 그처럼 나라 속까지 들어오는 것은 반드시 나라 백성 중에 그놈들과 내통하는 놈이 있어야만 된다. 그런데 국민의 정신이 올라가 있을 때에는 경찰이 아니더라도 그런 놈은 절대로 나지 못하는 법이다. 감히 그런 나라를 팔아먹는 놈이 나는 것은 국민의 정신도 이상도 아무 것도 없는 때다. 그리고 그 죄가 누구에게 있느냐 하면 그때 나라를 맡은 정치가, 그리고 교육, 종교에 관계하는 사람에게 있다. (233쪽)

 이놈들이 이때 임 장군에게 넉넉한 군사를 주지 않은 것은 그의 세력이 커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놈들이 무서운 것은 외국이 아니요 ,나라 안에 큰 인물이 생기는 일이다. 외국은 강해지면 거기는 식민지로 복종하면 그만이므로 그들에게는 전쟁에 지는 것도 걱정이 되지 않고 나라 주권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놈들에게는 오직 올바르고 위대한 어떤 사람이 나서 자기네 세력을 빼앗을까봐 그것만 걱정이었다. 그러므로 군사를 많이 안 주는 것이다.(3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