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좋은 이야기

원효 이야기 4

비숲 2015. 2. 8. 15:50
원효는 마당도 쓸고 장작도 패고 방에 군불도 때고 밥도 짓고 밭일도 하며 부지런히 보살행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루를 닦는데 학승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의 공부를 하는 스님들이 둘러앉아서 대승기신론을 두고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대승기신론은 경론 중 가장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학승들의 토론이 이렇다저렇다 하며 한참 갑론을박이 오가는데 원효가 마루를 닦으면서 듣자하니 완전히 엉뚱한 소리들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끼어들어서 "스님, 그건 그런 뜻이 아니고 이런 뜻입니다." 하고 참견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마루 닦던 노비가 스님들 공부하는 데 난데없이 끼어들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스님들이 화를 냈어요. 그 화내는 모습을 보고서야 원효도 자기가 잘못 나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요. 그래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공부하다가 판이 깨진 스님들은 스승을 찾아가서 하소연했어요. "스승님, 저희끼리는 아무리 이야기해 봐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좀 설명을 해주십시요." 그러자 스승이 대승기신론소를 탁 내어 주었습니다. 바로 원효가 쓴 책이었어요. 그걸 읽어보니까 그렇게 어렵던 경전의 내용이 너무나 쉽고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는 거예요. 감탄하며 살펴보니 아까 그 불목하니가 한 이야기와 같은 겁니다. 그러자 학승들은 이상한 상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니 평소에도 불목하니라 하기에는 좀 특이한 사람 같았어요. "최근에 원효대사가 자취를 감추고 없어졌다는데 어쩌면 그분일지도 모르겠다. 내일 확인해봐야겠다." 이렇게 되었어요.

한편 그 절에는 꼽추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이 스님은 밥 먹을 때에 함께 밥을 먹지 않고 늘 때가 지나서야 부엌에 와서 누룽지 달라 뭐 달라 하니까 절에 사는 노비들마저도 이 스님을 얕보고 구박했어요. 원효대사는 그 스님을 불쌍히 여겨 다른 불목하니들이 구박을 해도 잘 보살펴드렸어요. 늦게 오셔도 밥을 따로 챙겨놨다가 드리고 누룽지 달라 하면 눌우지 준비해 놓았다가 드리며 극진히 보살펴드렸어요. 이 스님은 딸랑거리는 방울만 하나 차고 다닌다 해서 사람들이 그냥 방울 스님이라고 불렀어요.

그날 밤, 자기 신분이 노출된 걸 짐작한 원효대사가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몰래 대문을 열고 절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문간채에 살던 방울 스님이 방문을 탁 열면서 "원효, 잘 가게!" 이러는 거예요. 이때 원효가 크게 깨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