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로 밥하면
"이 세상은 누가 창조했습니까"
그냥 침묵했더니
"침묵이 답입니까?"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모래로 밥을 하면 몇 시간 만에 밥이 되겠습니까?"
"밥이 안 됩니다."
"밥이 되나 안 되나 물은 게 아니에요. 밥이 몇 시간 만에 됩니까?"
"네?"
"몇 시간 만에 됩니까?"
"네. 알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누가 창조했다고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모래로 밥을 하면 몇 시간 만에 됩니까?'하고 되물었을 때 현명한 사람은 바로 알아듣습니다. 한 시간, 열 시간, 백 시간 어떻게 답을 해도 답이 아닙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었으니까요.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말에 집착해서 몇 시간 만에 밥이 될까 끙끙거리지만 이걸 확연히 아는 사람은 질문에 구애받지 않고 "밥이 안 됩니다."하고 대답하겠지요. 밥이 되는냐 안 되느냐를 묻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해도 밥이 단 되기 때문에 몇 시간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세상을 누가 창조했느냐는 질문도 그와 같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누구'에 대해 대답을 하려 듭니다. 그런데 이 질문 속에는 이 세상은 창조되었다는 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모래로 밥을 하면 몇 시간 만에 되겠냐는 질문 속에도 모래로 밥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전제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전제는 잘못된 전제입니다. 누가 창조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누구'에 빠지는 것은 창조되었다는 전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미 전제가 잘못된 질문인 것을 꿰뚫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답을 찾느라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 지금 여기 깨어 있기, 법륜, 정토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