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진보교육감 13석, 노무현 당선보다 더 큰 의미”(한겨레신문 6월 16일자)
진보교육감 13명, 진보세력의 기회이자 위기다
(중략)
진보교육감들이 ‘진보교육’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기존의 악에 대한 혁신적 해체만을
진보교육으로 생각한다면
보수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교육의 기강과 질서 감각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국민대중의 외면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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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안에서 무기력하게 스러져간 어린 생령들의 행동은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라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최선의 방도였다는 것을 우리는 공감하고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그 학생들의 상당수가 애절하게 부모님들과 카톡을 했다. 그 덕분에 귀중한 자료가 많이 남았다. 그래서 국가 시스템의 무능의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적 차원에서 안타깝게 반추해볼 수도 있는 또하나의 가설은 카톡이 아닌 생존의 방법의 모색을 위한 진지한 호상적 토론이 우선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선중의 마이크에서 울려퍼지는 “가만히 있으라”는 절대명령이 있었다 할지라도 생사의 기로에서는 생존을 향한 본능적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충분한 토론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공간은 카톡과 더불어 개별화될 수밖에 없었던 문명의 구조적 현실태에 종속되어 있었고, 절대적 권위에 대한 물리적 순응만이 그들의 행위를 지배했다. 앞서 지방선거를 예견한 언론인이 헌법 수호를 운운했지만, 헌법이라 하는 것도 필요에 따라서는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헌법 수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헌법도 수정될 수 있는 것이어늘 “가만히 있으라”는 마이크 소리가 개정의 대상일 수는 없겠는가? 생존의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탐색대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긴밀한 상황연락을 취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요번 6·4 지방선거는 “가만히 있으라”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기존 세력의 역사몰이 전체에 대한 응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순결한 단원고 학생들은 우리 시대의 교육이 저지른 죄업의 희생양이었다.
보수는 표가 갈리고 진보는 단일화되었기 때문에 진보가 이긴 것이 아니다. 보수를 표방하는 교육감들의 정책방향이 근원적으로 불성실하고 이 땅의 자녀들을 사지로 휘몰고 있다는 불안감이 국민들의 일반정서를 각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보교육감들의 정책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나 요구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진보교육감들이 좀더 성실하고 신중한 느낌을 준다는 것, 그리고 보수교육감들의 정책이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는 마당에는 진보세력에게 일단 기대를 걸고 보자는 애절한 마음이 작동되었던 것이다. 17명의 교육감 자리 중에서 13석을 진보세력이 차지했다는 것은, 내가 단언하건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보다도 더 큰 역사적 의의를 갖는 사건이다. 더구나 노무현도 “바보”가 되고 말았던 부산과 경남 지역마저 진보교육의 정신에 겸허하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의 부마민중항쟁에 비견할 수도 있는 민중역량의 표출이다.
정치적 혁명이야말로 역사에서 강렬하게 표출되는 진정한 전변의 계기인 듯이 보이지만, 대부분의 정치혁명은 권좌의 인간들을 환치시키는 데 그치고 말 뿐이며, 교육혁명을 수반하지 않는 한 좌절로 끝나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서 정치혁명보다 교육혁명이 역사의 진로를 더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부형태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공동생활의 형식이요, 공유하는 경험의 양식이다. 교육받은 유권자 없이는 보통선거권은 의미가 없으며,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으면 국민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가질 수 없다. 민주와 교육은 한몸이며, 교육은 민주사회의 지표이다. 교육의 바른 방향을 주도하는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주체이며 정치권력의 구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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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철학자 |
17명의 교육감 중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자리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한국 역사의 진보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더없는 기회인 동시에 더없는 위기상황이다. 진보교육감들이 “진보교육”이 과연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오직 기존의 악에 대한 혁신적 해체만을 진보교육으로 생각한다면, 보수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교육의 디시플린(규율)과 기강과 질서의 감각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진보교육”은 국민대중의 외면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그 추동의 구심력을 상실할 것이다. 보수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오히려 진보의 기대를 좌절시켰다. 그 죄과를 지금 우리는 10년이나 치르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진보교육감의 실정이 민중에게 또다시 오욕의 인상을 던져준다면 오늘의 기쁨은 이 민족으로부터 영원히 진보의 가능성을 앗아가는 비극이 될 것이다. 나 도올은 진보세력의 승리를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
김용옥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