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다. 정말 희한하게, 지쳐서 마치 남은 밧테리 잔량이 깜박깜박 거릴 때 쯤이면 방학이 온다. 지난 두 주간에 시험을 세차례 치고, 결과처리하고, 생활기록부 성적과 행동발달상황 작업하고, 여름방학계획서 끝내놓고 나니, 정말 지친다.
점점 기운이 소진해가는 나와 달리 아이들의 에너지는 그야말로 나날이 빵빵한 상태다. 에너자이저라는 건전지 광고 처럼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이다.
오늘은 2학기 책을 나눠주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가도 돼요? 알림장 쓰나요? 대여섯명이 연이어 국수를 넘기고 있는 내 얼굴 옆에 얼굴을 나란히 하고 묻는다. 넘어가던 국수발에 목에 걸릴 지경이다. 왜 일찍 가야 하는냐고 물으니, 학원에 늦기 때문이란다. 요즘 학교는 학원과 경쟁해서 져버린 것 같다. 학교가 학원에 져버린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학원은 돈을 낸다는 데 있다고 본다. 돈을 냈으니 늦어서 수업을 못 들으면 아깝잖아. 그럼 학교도 돈을 받아?(사실은 우리는 이미 학교에 돈을 내고 다니고 있다. 직접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들지 않을 뿐이다.) 나라 망하는 지름길이 초등학교 돈 받는 일이다. 그래도 이 흐름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초등학교도 돈 내고 다니게 될 지 모르겠다. 대학교는 당연히 돈 내고 다니고, 중고등학교도 무슨 자사고니, 외고니 하는 데는 대학교만치 돈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못 보내 난리여서 그런 학교 더 세우려 한단다.
알림장을 쓰고 가라고 했는데도, 몇 명은 그냥 갔다. 교실에서 물어보니 그냥 간 게 아니고 2학기 책을 가져갔단다. 책 가져간 애들 수를 알아보니 무려 11명. 남은 책을 확인해 봤더니, 한 권이 남는다. 과목별로 종류와 권수를 재확인시키고, 남은 아이들 책을 하나씩 챙겨주고 났는데, 이젠 사회가 한 권 모자란다. (뭐든 확실하게 하려면 내가 해야 한다. 아니면 이렇게 어디선가 무언가가 빠지게 되다.)
아이들이 한명씩 가져가는 사이, 왜 난 늦게 가져가냐고 원성이던 아이가 하나, 삐져서 가버렸다. 책을 가져가지도 않고 학원에 가야한다며 먼저 가버린 아이 몫까지 두권씩만 남긴 채, 부산하게 이름을 적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 나갔다.
선생님이 계시는 수업시간에 떠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복도를 지날 때 선생님을 앞질러 가는 것이 뭔가 결례가 되리라는 느낌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가지고 있을 만큼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꿈같은 세월이다. 그 시절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조심스러움은 우리 사회가 지켜도 좋을 미덕이라고 믿는다. (내가 선생이라 그런 말 하는 게 좀 거시기하다만.)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건 얼마나 부럽고 행복한 일인가.
아무튼 이제 곧 방학이다. 아이들이 별 탈없이 한 학기를 잘 마치게 돼서 다행일 따름이다.